/사진=픽사베이
'임무중심형 연구개발(R&D)'는 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을 관통하는 화두다. 올해 국가 R&D 자원 배분 우선순위도 주요 연구사업의 임무지향성 강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유럽, 미국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럽연합은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프로그램, 미국은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개념을 적용한 ARPA-E(에너지), IARPA(정보기술), HHS BARDA(의공학) 등을 통해 국가 연구개발에 임무지향성을 이식하고 있다.
변화하는 국제정세...R&D도 '작전'이다
국가적 목표와 임무를 위한 하향식(Top Down) R&D 방식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국방, 항공, 우주 등 전통적 분야는 물론 목적기초, 타겟중심, 난제해결 등 다양한 이름으로 과학기술과 국가·사회 이슈 간의 연계 강화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과학자들의 창의·호기심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기초, 응용, 실용화의 단계를 거치는 상향식(Bottom Up) 접근방식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럼에도 임무지향적 R&D가 세계 각국의 핵심 정책 아젠다로 다시금 부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G2간 탈공조화(Decoupling)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공급망의 동맹화, 경제의 안보화, 기술의 패권화라는 대립구도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시장 질서에서 국가 개입으로 비쳐질 까 꺼려왔던 국가주도 산업정책, 기술전략 등도 앞 다퉈 발표되며, 발 빠른 입법화 등으로 뒷받침되고 있다.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글로벌 분업체계와 공급망은 '상호보완의 무기화'라는 리스크로, 글로벌 밸류체인의 중심은 원자재, 중간재에서 기술과 지적재산권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래산업의 기술경쟁에서 승자독식의 게임체인저화도 갈수록 심화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변화된 환경은 과학기술을 전략 자산으로, 연구수행은 이의 확보를 위한 전술 작전으로 국민적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
탄소중립은 전례없는 고난도 미션
무엇보다 국가 R&D의 임무지향성은 탄소중립과 같이 시간과의 싸움이 중요한 글로벌 도전과제의 출현으로 그 중요성이 배가되고 있다. 인류 성장의 근간인 탄소기반의 기술, 자원, 인프라를 지구가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그것도 정해진 시간표 내에 탈탄소화하는 것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도전이다. 그동안의 임무중심형 R&D는 목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비용과 같은 경제성 부분이 덜 감안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탄소중립 R&D는 기존 경제산업의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성장동력까지 발굴해야 하는 고난도의 여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R&D 방식이 글로벌 도전과제 해결에 적합하다는 것은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온 주요 국가의 관련 프로그램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들 프로그램은 중요·시급성에 따른 우선순위 설정, 권한과 책임 기반의 속도와 유연성 확보, 연구주체 간 협업 생태계 구축 등을 대표적 특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목표와 시간표가 명확한 연구에서 역량과 자원의 최적화를 용이하게 한다.
더구나 국가적 자원동원의 효율성과 민간부문 역동성을 접목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글로벌 도전과제의 난위도와 시급성은 하향식과 상향식 각각의 장점 결집을 요구하고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상당수가 이러한 임무중심형 R&D를 통해 파괴적인 혁신을 이룩한 것은 결코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아울러 이미 정부 정책과 연계추진되는 임무중심형 R&D는 규제 환경 대응 등 혁신형 스타트업들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데도 유리한 환경을 제공한다.
탄소중립 위한 임무중심형 R&D '총력전' 나서야
우리 정부는 탄소중립 등을 아우르는 12대 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하고, 입법화, 로드맵화 등을 통한 대대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민간주도, 정부지원이라는 바람직한 방향하에 광범위한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도 준비하고 있다.
이제 임무중심형 R&D 총력전을 전개할 기반이 마련되었다. 글로벌 환경변화는 과학기술을 먹고사는 문제에서 죽고사는 문제까지 그 위상과 역할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한민국 과학자의 창의성이 임무하는 방향성과 적절히 연계되어 국가안위와 미래먹거리를 넘어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까지 결정적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원유형 국가녹색기술연구소 미래혁신기획단장
원유형 단장은 영국 서섹스 대학 정책학 박사로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으로 25년간 국가 연구개발, 과학기술 거버넌스 등을 연구해 왔으며, 현재는 KIST 부설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의 미래혁신기획단장으로 국가 기후·탄소 정책과 협력에 대한 기획 및 연구를 진행 중이다. KIST 정책실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문위원 등을 역임한 바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전임교원, 고려대학교 그린스쿨 겸임교원으로 후학양성에도 힘써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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